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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신 내 탓이란다

수다공작소 2010. 9. 12. 19:13

Taxi

힘겹게 뛰어 가까스로 막차에 몸을 실었다.

반대편에 앉은 아저씨의 짙은 남색 우산에서 일정 주기로 떨어지는 빗물을 응시하다 구반포역에서 내렸다. 

지옥과 맞닿은듯 길게 뻗은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고정시킨 뒤 우산도 뚫을 만큼 강하게 내리꽂는 빗줄기의 세상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. 

혼줄난 아이마냥 정신은 훌쩍였고, 양손 가득 실린 축축한 짐들은 만유의 인력을 제대로 증명해보겠다는 심사로 더욱 더 나를 지하세계로 이끌었다. 

한참을 기다려도 "빈 차"라고 쓰인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. 그나마 먼 발치에서 택시 한 대가 다가와도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콜택시를 타듯 택시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. 

"이러다가 집에나 갈 수 있을까?"  

나 만큼이나 한참을 기다리는 한 여자가 있어 다가가 '어디 가냐?'고 물으니 '내방'이란다. 순간 자동발사적으로 '같은 방향이나 동승하자'고 내뱉고서 구원투수가 나타난듯 미소를 지어본다.  

한 5분이 지났을까? 저 멀리서 한 대의 차량이 다가왔고, 그 여자는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해 재빨리 뛰었다.  

"설마 날 버리고 갈 심사는 아니겠지?" 

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일이 발생했다. 거의 택시에 당도한 여자를 뒤로 한 채 그 차가 내 앞에서 정차했던 것이다. 이런 걸 배신자의 최후라고 해야 하나? 아무튼 차 문을 열고 중력에 매인 내 몸을 끄집어내 천국 문을 통과했다. 

한참을 택시를 타고 가는데 내비게이션에 이상한 동네들이 등장했다.  

"흑석동? 이게 뭐지?"

"손님, 대방동 어디 가시나요?"

"어! 아저씨 전 내방동인데요." 

내방을 대방으로 찰떡같이 알아차린 기사분은 머쩍은 표정을 지으며 5,000원을 향해 질주하는 미터기를 다시 기본요금으로 돌리면서 자기 잘못이라며 내 목소리가 이쁘단다. ㅡ,.ㅡ;;  

"서울 사람 같은데 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도 말하지 않았어요?"

"저 여수 출신이예요. 그리고 평소 지하철만 타고 다녀서 바깥에 나오면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요." 

택시비가 다소 부담되서 집 근처 큰길에 당도하자마자 '내려달라'고 요구했는데 이게 왠일인가? 무려 1,000원을 깎아주셨다. 이전에 미터기를 기본요금으로 돌린 것을 가만하면 꽤 큰 액수다. 그러면서 또 자기 잘못이란다. 

무한 피곤함을 등에 업고, 힘겹게 집으로 향하던 나에게 '내 탓이오'를 연신 내뱉은 그 기사분. 그 분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날 밤은 신입사원 시절에 겪은 최악의 악몽으로 기억됐을 것이다. 나도 앞으로 '남 탓'말고 '내 탓'하며 살아가련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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