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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계인의 아내, 그녀의 눈물 겹던 한 달 본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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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정오빠는 그와 결혼하면 다시는 나와 마주하지 않겠다고 어름장을 놓았지만, 그때 당시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. 오늘 나는 외계인의 집에서 나왔다. 어떤 대안도 없이 무작정 팔순된 아버지의 지하 단칸방으로 몸을 옮겼다.
한 겨울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오늘, 나는 그렇게 대책도 없이 살얼음이 언 세상으로 몸을 실었다. 남편은 밥 먹듯이 이혼을 말했고, 시아버지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. 출산 후 우울증 때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었던 나였는데, 직장을 통해 알게 된 한 사람으로 인해 다시 '희망'을 꿈꾸게 됐다.
나는 면세점에서 오랜 동안 일한 경력이 있다. 남편과 관계가 뒤틀리면서 다시금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고, 괜찮은 일자리를 얻게 돼 아이와 함께 단둘이 살 날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게 됐다. 하지만 그런 희망도 잠시 매장의 다른 직원들과 마찰을 빗게 됐고, 결국 한 달 조금 넘게 일한 뒤 일을 그만둬야 했다. 그들의 쌀쌀한 태도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직 깨지 못한 자아의 굴레를 생각하면 꼭 그들만의 탓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.
애슐리에서 그를 만났다. 가슴에 아이를 안고 그에게 아이를 보여주면 그가 얼마나 이뻐해줄까 내심 기대했다. 뒤에서 그가 내 어깨를 토닥였고, 그의 인도를 따라 애슐리에 둥지를 텄다. 처음 와 본 셀러드바라 다소 어색했지만, 이내 곧 적응했다.
나와 그는 참 비슷한 면이 많았다. 그 역시 나에게 "당신이 나와 생각하고 살아가는 성향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도와주는 거"라고 말했다. 그는 나에게 마냥 옳다고 말하지 않다. '우리'의 어설픈 사고 프레임이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게 골자였다. 옳았다. 그의 입에서 쉼이 없이 쏟아지는 말을 들으면서 웃기도 울기도 했다. 서른 다섯 그리 적지 않은 나이에 나는 4개월된 핏덩이를 안고 차가우리만큼 냉정한 세상에 홀로 섰다.
현재는 그가 나를 돕고 있지만, 곧 그도 떠날 것이다. 인생은 항구이기에.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. 새로이 일을 얻어야 하는데,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? 공동화장실을 쓰는 지하 단칸방이 우리 아이에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에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.
하지만 후회하기에 아이와 내 삶이 너무 아련하다.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.
"남편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해버려요. 아이에게 말하세요. 네 아버지는 외계인이라서 여기 없다고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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